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쁜가?
어떤 젊은이가 ‘십자가에 못박힌 삶을 가르치는 늙은 성도를 찾아갔다.
“어르신,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라고 물었다.
“그것은 세 가지를 의미하네. 우선,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한쪽 방향밖에 볼 수 없지.”

그렇다! 오직 한쪽만 보는 것이다.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할지라도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몸을 돌이켜 뒤를 볼 수 없다.
그는 뒤를 돌아보는 일을 끊은 사람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오직 한 방향만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주님이 계신 방향이요, 교회를 세우는 방향이요, 성화와 성령충만한 삶의 방향이다.

“젊은이,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 또 있는데,
그것은 자기가 있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라네”

그렇다!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집을 나서는 사람이 “다녀 오겠소”라고 말할 수 없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떠나는 사람은 영영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라는 찬양 진심으로 불렀는가?
이것을 우리가 더 강조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편하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경멸스런 짓을 우리가 중단한다면
회심자들이 더 많이 생길 것이고 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또 다른 것은 자기 자신의 계획이라네”

그의 계획에 대한 결정권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 버린다.
언덕에 올라가 죽어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자기의 계획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쁘게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바쁜가? 우리들의 계획 때문에 바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이미 끝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 중 일부는
세상 사람들의 계획에 못지 않게 육신적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고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계획을 우리의 계획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일이다.

침묵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어보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을 늘린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것이다.
그분은 당신에게 성령을 주시고 그분의 계획을 알려주실 것이다. - A. W. 토저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누가복음 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