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31-32, 37-38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이 세대는 기쁨이나 슬픔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예배에 전혀 감동이 없습니다.
기뻐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슬퍼하는 것을 보고 슬퍼하는 관객일 수 있습니다.
감동 받은 모습입니다.
우리도 그런 감동 받은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관객으로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성령의 감동이 아닌 성령의 충만... 곧 다스림을 받는, 주님의 영광에 직접 동참하는 예배입니다.
주님의 기쁨을 기뻐하고 주님의 슬픔을 슬퍼하는 능력입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슬퍼하는 것을 보고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것을 보고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죄의 슬픔을 가지고 슬퍼했습니다. (죄를 슬퍼하시는 주님의 슬픔처럼...)
그는 죄사함의 은혜의 기쁨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돌아 오는 죄인을 기뻐하시는 주님의 기쁨으로...)
누군가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모습 때문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 그 자체 때문에 갖는 기쁨과 슬픔을 누리는 자녀.
엄청난 가치의 소유가치를 깨뜨려 드려도 드려도 기쁘고 기쁜...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영적 기쁨이 있습니다.
슬픔 때문에 슬퍼하고 기쁨 그 자체 때문에 기뻐하는,
엄청난 가격의 향유를 드려도 양에 차지 않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기쁨이었습니다.
죄의 슬픔의 깊이를 아는 만큼 자녀 된 그녀의 기쁨은 높았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아픔과 기쁨 때문에 울고 웃습니다.
자식이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것을 보고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도 마찬가지로 부모의 아픔과 기쁨 때문에 직접 울고 웃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첫번째 증거가
아버지의 영광에 울고 웃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모습 때문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사실로 인해 똑같이 반응하는 것이 가족인 것처럼
성령이 증거하시고 자녀가 되면 주님의 기쁨으로 웃고 주님의 아픔이 내 아픔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으십시오.
성령충만... 예배의 기쁨을 알 것입니다.
고전2:9-13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당신은 자녀입니까? 성령으로 충만하십니까?